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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1부.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풍산홍씨(豐山洪氏)는 경남 안동 풍산 지역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1242년(고려 고종 29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국학직학(國學直學)을 지낸 홍지경(洪之慶)이다. 홍지경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 홍간(洪侃)은 1266년 장원급제하여 문장가로 활동하였다. 풍산홍씨는 10대조 홍이상(洪履祥)에 이르러 집안이 번창하게 되었는데 홍이상은 1573년 생원이 되었고, 6년 뒤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그 뒤 내직으로는 대사헌, 대사성, 부제학 등을 외직으로는 안동부사, 청주목사, 개성유수 등을 지냈다. 홍이상의 아들 홍방(洪霶), 홍립(洪雴), 홍집(洪?), 홍영(洪霙), 홍박(洪𩅿), 홍탁(洪𩆸)은 아버지를 이어 대부분 출사하여 당대에 가문의 명성을 더욱 넓혔으며, 여섯 형제 중 홍탁은 해주 최씨 사이에 사형제를 두었고, 차남 홍주천은 아산지역 정익공파 입향조 홍만조의 아버지이다. 아산지역에 자리 잡기 전부터 풍산홍씨는 그 가문의 형성이 오래되어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집안이었다. 고려시대부터 뿌리 깊게 내려온 가문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가계도와 족보, 집안에 이름난 인물의 문집들이 전시되며, 현재까지도 문중에서 정갈하게 제사를 지내며 집안 선조를 잊지 않고 기리는 숭고한 마음을 살펴본다.

2부. 홍만조, 나라의 잔치에 함께하다 홍만조(洪萬朝)는 풍산홍씨가 아산에 세거하게 된 바탕을 마련한 인물이다. 홍만조는 숙종대의 문신으로 자는 종지(宗之), 시호는 정익(貞翼), 호는 만퇴당(晩退堂)이다. 그는 성균관 유생을 거쳐 과거에 급제하여, 수도 한양에서는 한성부판윤과 형조판서 등 주요 관직을 지냈으며, 지방으로는 충청도관찰사를 비롯한 전국의 관찰사직을 맡아 백성의 구휼에 힘쓰는 청렴한 관리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1719년 75세에 숙종과 함께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나라의 잔치에 함께 했는데, 이를 기념하여 만든 《기사계첩》은 홍만조의 후손들이 잘 보관해 온 덕분에 2020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8세기 전반 궁중기록화 및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화첩 안에는 ‘만퇴당장(晩退堂臟, 만퇴당 소장), ’전가보장(傳家寶藏, 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 등의 글씨가 수록되어 있어 수급자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풍산홍씨 소장본은 현전하는 6점의 기사계첩 중 유일하게 내함(內函), 포갑(包匣), 외함(外函) 세 겹으로 제작된 보관함이 남아있어 당시 왕실 반사품(頒賜品)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기사계첩과 함께 홍만조의 생애를 담은 일록 및 각종 교지와 홍만조 초상화, 인장 등을 통해 당대 문화와 예술, 사회전반의 시대상을 한눈에 조망해본다.

3부. 집안의 규율을 통해 명문가의 맥을 잇다 홍만조(洪萬朝)의 셋째 아들 홍중인(洪重寅)은 조선 후기 혼란한 시대 속에서 명문가의 맥을 이어 나가기 위해 후손에게 규율을 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집안 후손들이 지켜야 할 점들을 적어 글로 남겼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들은 문중에서 소중하게 간직되어 후손들에게 전해졌다. 풍산홍씨 집안 규율의 바탕이 된 가계(家戒)를 비롯하여, 선조들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가장, 행장, 교지 등 당대 다양한 형태의 문서들을 살펴본다. "나는 세상의 변고를 겪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직접 눈으로 본 것을 기록하고 자손에게 보여 경계로 삼는다." - 홍중인, 『가계家戒』 중에서

4부. 씨앗을 뿌려 꽃을 피우다 풍산홍씨 이야기가 담긴 물건들이 여러 대를 지나면서도 보존될 수 있던 이유는 선대의 물건을 소중히 간직한 후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 중 홍승길(洪承吉, 1893-1975)은 선대의 자료를 수집하여 보관하는 한편, 집안의 이야기를 모아 일대기로 정리하는 등 가문의 보물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올 수 있는 역할을 한 중요한 인물이다. 또한, 정익공파는 아니지만 풍산홍씨 집안에서 예술적 재능을 꽃피웠던 홍우백(洪祐伯, 1903-1982) 화백은 1921년에 경성 제2보통고등학교(현 경복고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4학년 재학 중 조선미술전람회 4회(1925년)에서 “판도(坂道)”로 최초 입선하여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 입선자는 일본을 다녀온 유학파가 대부분이었지만 유학을 다녀오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16회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정물화 및 풍경화를 주로 그렸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그림 중 특이하게 서양화에 동양화기법으로 대나무를 그리기도 하였다. 1940년~50년대에는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책표지 장정 및 삽화가로도 활동하였다. 홍승길이 집필한 문집류를 비롯하여, 홍우백 화백의 그림, 그리고 풍산홍씨 가문에서 수집해 온 다양한 소장품들을 소개한다.

Workshop
집안의 보물, 후대에 전하다 : 아산세가 풍산홍씨 특별전